현행 대통령제는 헌정수호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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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의식과 공공의식이 마비된 대한민국
- 부패를 넘어 타락하고 관권화된 시민사회
- 정의, 상식, 공정 모두 법치로 바로 세워야

 

국제 모범국가 대한민국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이다. 어려운 코로나상황의 세계 경제환경에서도 한국은 올해 1조 2천억달러 이상을 교역할 것으로 전망되는 정말 잘나가는 중견국가다. 그런데 경제하나만 그렇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함께 포진한 국제관계에서 국제법적 레토릭인 각국의 주권 존중은 그저 희망사항이다. 현실은 불평등하며, 힘의 수직관계 행사가 다반사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5백년 조선조와 바로 이어지는 일제시대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조차 모호했던 백성들을 갑자기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를 바탕으로 박정희라는 영웅이 산업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전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 대한민국만이 '국가 선진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인류역사 최초의 국제 모범국이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역설적이지만, 바로 일제시대 36년과 6·25전쟁 때문이다. 조선조의 지독한 전통 습속을 일본이 점령하면서 근본적으로 말살시켜 버렸다. 급기야 ‘내선일체(內鮮一體)’정책으로 한국적인 것을 전부 일본화시킨 결과, 한국은 그 어떤 부족적 전통국가도 흉내 낼 수 없었던 근대국가를 향한 백지상태의 제로그라운드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는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에 비친 잔상(殘像)

 

그 위에 국가를 세운 영웅 이승만이 있었고, 6·25전쟁으로 전통과 습속에 젖어살던 백성들이 장갑차와 대포를 다룰 수 있는 생존형 기능공들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지주계급과 양반계급은 일시에 사라지고, 국민 전체가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후 일본의 발전도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다. 천황제하에서 전통적 습속이 강했던 일본사회도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일본의 근대적 통치를 완전히 일임했던 맥아더헌법, 다시말해 평화헌법으로 인해 강압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문명의 제로그라운드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6·25와 베트남전쟁에서 일본을 병참기지로 활용했던 미국의 도움을 받아, 급기야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아무리 메이지유신의 철학자들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서 일본이 문명국으로 탈바꿈하는데 일조했다지만, 후쿠자와 유기치인들 천년 이상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던 그 많은 서양제도와 기독교 전통을 어떻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한국보다는 훨씬 나아보이지만 아직도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성을 위해서 일본도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발전은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전통이 말살된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제도와 이를 받아들였던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이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통해서 양국의 벼락국민들을 교육시키며 시민사회를 강압적으로 끌고 간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더 발전했던 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구미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강대국 일본의 힘을 미국이 '태평양 안보'를 위해 다시 부활시켜주려고 남다른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미국을 대신해서 일본이 견제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지정학적 이해를 놓고 미국은 일본의 역할을 보조해 줄 한국이 필요했던 것이며, 이것이 역사가 말하는 한미관계의 불편한 진실이다.

 

셀카의 가벼움과 기자의 무거운 질문

 

호주 모리슨총리는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해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문대통령을 거듭 회유해서, 호주 국빈방문을 실행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文의 대륙지향의 정신세계를 비난하며 해양세력과의 가치동맹을 강조했으나, 文은 대놓고 친중-종북-원미-반일을 주장했다. 호주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거저 멀뚱멀뚱 동문서답으로 답했다.

 

 

현재 가장 우려되고 있는 사안은 만약 문대통령이 미-중 양 강대국을 배제하고, 남북간 단독으로 종전선언을 할 경우, 이는 정전협정 비서명국인 한국이 북한의 남침인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정당했음을 승인해주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대북 항복선언이 되는 셈이다. 아마도 한국내 종북세력과 문대통령은 그렇게 해서라도 북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것 같다.

 

文정권 5년동안 이들이 수행했던 저강도의 체제전복과 민족해방 전략·전술로 대한민국이 다 망가졌는데, 대다수 국민들은 어떤 수준인지 잘 모른다. 아직까지 경제가 버티고 있고, 文정권 주사파 위정자들의 현란한 사기와 기만의 선전·선동 전술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3가지 요소가 부존(不存)상태에 있다.

하나는 국시(國是)인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둘째, 획일적인 평등의식에 압도 당한 시민의식의 부재로 참다운 시민사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물질과 권력이 지상목표가 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요구하는 공공의식 또한 현저히 추락해있다.

 

명예로운 로마시민과 로마법

 

공동체의 가치를 언급하는 헌법이라는 단어는 “Constitution”이다.

이는 Con 다같이, Stitute(Set-up) 국가의 기본틀이 되는 법제도를 세운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신정체제인 유럽의 중세는 교회를 통한 신의 의지로 다스려졌다. 그런데 왕이 지배하는 세속적 사회가 늘어나면서 일상이 원하는 현실적인 통치원리가 필요했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중세 세속국가들은 로마법에서 통치원리를 가져왔다.

 

로마는 신분제 사회였지만, 자유인과 노예의 관계를 법으로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자유인의 가치는 시민의 공적 명예의식으로 발현되었다. 로마의 정무관은 필히 군복무를 이행한 인물이어야 했다. 1년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무보수로 시민에 봉사하는 명예직이었다. 그래서 로마시민 앞에는 항상 ‘명예로운’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중세의 로마법 수용은 일종의 개인의 자아와 인간적 소망의 복원과정이었다. 재산권으로부터 시작해서 계몽주의철학자들을 거쳐, 인간의 행복추구권까지... 그렇게 인간의 법체계는 점진적으로 ‘건축’ (Stitute)되어 갔던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어디서 미국을 건축할 법철학과 실증법들을 가져왔겠는가? 이들은 로마법 강독이라는 사적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각자 자신들의 이름위에 로마식 별명을 하나씩 붙일 정도로 로마의 법철학을 논의하고 탐독했다. 그 바탕 위에 미국독립선언서와 인권선언서가 나왔고, 그 영향으로 프랑스혁명과 프랑스인권선언문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근대적 법체계의 발전은 나폴레옹법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오늘날에도 자유민주주의헌정질서는 조금씩 진보하면서 보다 나은 형태로 건설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단임 대통령제와 헌정질서

 

정의·공정·상식의 요소들을 포괄하는 ‘법치’를 앞세운 윤석열 후보가 정권교체와 정권심판을 시대정신으로 열심히 대선 과정에서 투쟁하고 있다. 文정권 5년의 유사전체주의에 따른 폭정으로 극도로 분노하고 있는 유권자들이 정권교체를 위해 나설 것으로 보여지지만, 성한 곳 하나없는 환경에서 그나마 대통령직선제와 단임제를 선택한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희망을 걸어본다.

그래도 지난 세월 5년마다 선택되는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 국가개혁을 향한 긴장감이 항상 존재했다. 물론 뽑아놓고 후회하는 경우도 유권자마다 각양각색이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을 개혁해 낼 수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같은 탁월한 지도자의 탄생을 유권자들은 늘 소망해 왔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한 문제가 많아서 내각제나 이원집정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부패하고 기득권화된 관료사회와 언론 및 율사들의 세계, 그리고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있는 관권화된 시민단체들, 공법개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소비에트화된 지자체, 종북-종중-반미-반일 세력을 주도하는 전국적 규모의 좌파세력들...

이들을 총괄적으로 개혁해 내려면 현행 헌법의 대통령직 외에는 답이 없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막중한 책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 · 량 <정치학박사 /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초청시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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