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전동혁 신부, 자유민주세력에 간절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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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천 미사강론, ‘외롭지 않은 자로 산다는 의미’
- "우리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할 일을 하는 사람들"
- "역사적 교훈에서 선대의 위대한 업적 깨달아야"

 

지난 9일(일) 명동 가톨릭회관 1층 대강당에서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의 월례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에서는 미국 교포사회를 중심으로 가톨릭 사목활동을 해온 전동혁 신부가 미사강론을 주재했다.

 

안구 치료로 위해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연단에 오른 전 신부는 강론의 첫 일성으로 주변을 긴장시켰는데, 강론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오늘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저와 생각이 비슷한 분들에게 제 소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결코 외로운 자들이 아님을 함께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했어야 했던 일들로 말미암아 바다에 둘러싸인 섬처럼 고립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외치지 않으면 돌멩이가 외치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뭉치지 않으면 공든 탑이 무너져버리기 때문에 만사를 제치고 길거리에 나왔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더욱 손가락질과 비아냥거림을 받는 자들이 되었고 대화를 나눌 상대조차 없는, 말 그대로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사에 참석한 이들이 숙연해졌다. 이어서 전 신부는 4가지로 구성되어 있는 강론을 준비한대로 읽어가는 것으로 진행했다. 다음은 강론 요지다.

 

 

1. 동지들이여! 우리는 왜 외로울까요? 그것은 우리가 서있는 위치 때문입니다.

이 나라를 사회주의와 공산혁명으로부터 지켜내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하여 빈곤이라는 죄악을 몰아내고, 상위 5%의 경제대국의 지위에 올라 미래의 문을 열었을 뿐 아니라 21세기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게 만든 주인공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주역들과 그들의 피땀은, 슬프게도 "그들의 통치와 업적은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일 뿐이었다”는 이 한 마디로써 끝나버렸습니다. (중략)

 

그들은 우리의 모든 생각, 주장, 정책 앞에 “독재적인, 정의롭지 못한, 반민주적인, 기득권적인, 비인간적인, 반인권적인, 친미적인, 그리고 토착왜구 같은 반민족적인, 반역사적인, 반사회적인, 반노동자적인, 가진 자들을 위한, 자본주의적인, 반환경적인, 반인륜적인, 비도덕적인, 비복음적인, 수구적인, 시대착오적인, 보수골통적인” 등등의 수식어를 입혀버립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하여 백전백패입니다. 이 감옥이 우리가 서있는 위치입니다. (중략)

 

우리를 기득권이라는 악을 비호하는 방패를 들고 이에 반하는 자들을 악마의 창으로 찌르는 골리앗이라고 매도하거든요. 반면 상대는 선을 지키려는 마음과 악을 처부수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들고 있는 다윗이랍니다.

누가 이기죠? 답은 정해져 있어요.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반인권적이고 비인간적인 냉혹-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생각 안하시죠? 그러나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쁜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출발선이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2. 외로운 그대들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외롭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들이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중략)

오늘날 이것을 “행동하는 양심” 혹은 “실천적인 정의”라고 부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들도 투쟁했고 광화문에 모였으며, 매달 이 자리에도 모이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우리보다 앞선 이들이 저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왔던 바람, 고비사막을 거쳐 천하의 중심이라고 부른 곳을 황량한 곳으로 얼어붙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동방의 등불까지 암흑 속에 가두고자 했던 그 혹독한 바람에 맞서 싸웠습니다.

한민족의 불행을 딛고 역사의 아픔을 안고서 선봉에 나선 그들 덕분에 오늘의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대여! 그렇다면 외롭지 않은 자로 산다는 것의 역사/사회적 의식은 무엇일까요?

저는 BC 2세기, Terentius의 “Homo sum. Humani nihil a me alienum puto.” 곧 “나는 인간이다. 인간적인 것은 그 무엇도 나에게서 낯설지 않다”는 말씀으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결코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이 생각이란 다름 아닌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중략)

 

 

책을 손에서 놓은 자는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너와 대화하기 위해서, 우리의 지식이 빈약해서, 우리가 옳은 지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독한 방의 외롭지 않은 외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이 현대 세계는요, 맑스 때문에 발전했어요. 마치 십자군 원정 때문에 이슬람이 초월적 유대관계로 발전한 것처럼, 이단이 교리를 체계화하도록 도와준 것처럼, 나의 적수가 이룩한 공로입니다. (중략)

 

너에게서 배우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없는 자는 진정한 우파가 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있는 위치는 저 사람이 서있는 위치를 필요로 하고, 나아가 또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관심사는 결국 Teretius가 말한 “인간에 관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으로, 타협할 줄 아는 자에 대한 당부 말씀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일단 타협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뉘앙스는 대화할 줄 아는 자, 나아가 포용과 양보할 줄 아는 덕목을 뜻합니다. (중략)

많은 우파 유투버들이 상대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면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중략)

 

 

우리가 내세우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 어떤 그럴 듯한 이론이나 설명보다도, 기록으로 확인된 역사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보다 강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깝게는 쓸데없는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나라를 비롯하여 멀게는 남미의 국가들, 특히 전 국민의 95% 이상이 거지로서 평등한 베네수엘라를 보고 있습니다. (중략)

 

안으로는 큰 뜻을 의식하여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포기를 뜻하고, 대의를 위해서 협력할 줄 아는 덕목이 바로 타협입니다. 이미 중국과 베트남에서 보았듯이, 또 아프카니스탄의 교훈에서 보고 있듯이, 부정부패로 망가지는 국가는 그 어떤 도움도 무용지물입니다.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지들이여! 외로운 전사들이여!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은 투사들이여! 아니, 외롭지 않은 자로 살기 위하여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나, 그대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표하는 바이며 이 국가도 교회도 언젠가는 그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우리가 되찾아야할 것을 생각하고 있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고 있으며, 우리가 서있어야 할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고,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야할 뜻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곧 외롭지 않은 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을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니 모두들 힘내시고 다시 일어서길 빕니다...

 

전 신부의 강론이 끝난 후, 가톨릭 미사강론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한동안 계속되었다.

 

대수천 미사를 준비한 정무부 상임대표 직무대행은 “새해를 맞아 대수천 가족들이 좀더 힘을 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준비했다. 열정적으로 미사강론을 준비하신 전동혁 신부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며 “매월 월례미사로 진행하는 것이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코로나 거리두기 방침 등이 조속히 해결되어 이런 미사를 거리에서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수천은 대한민국의 자유가치와 북한주민의 인권, 신앙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가톨릭 천주교인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이다.

 

전동혁 신부의 미사강론은 대수천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대수천 유튜브 https://youtu.be/jNvhwl6bL6k>

 

김 · 정 · 훈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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